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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허상을 깨닫는 것이 곧 성장하는 것 재송
2018. 10.18(목) 15:01확대축소
앙투안 장 그로가 그린 나폴레옹 보나파르(1796)
인문지행의 세상읽기 60. 영웅의 허상을 깨닫는 것이 곧 성장하는 것



대문호가 바라본 ‘영웅’과 ‘영웅사관



영웅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상당히 자극적이다. 이 단어를 말하는 순간 평범한 사람들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뛰어난 능력과 완벽함이 느껴지는 특별함 때문이다. 요즘처럼 세상 돌아가는 일이나 매일의 일상이 그저 그만그만하게 답답할 때는 어딘가에서 숨어 있던 영웅이라도 나타나서 모든 골치 아픈 일들을 한 방에 해결해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사전에 쓰인 영웅의 뜻풀이를 보면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에서 흔히 영웅은 보통 사람과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종류의 사람처럼 생각된다. 영웅 중에서도 더 뛰어난 영웅으로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사람이 나폴레옹이다. 그런데 이런 나폴레옹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어떤 눈으로 보는가를 살펴보면 자못 흥미롭다.

나폴레옹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이 잘 드러난 작품이 ‘전쟁과 평화’다. ‘전쟁과 평화’는 186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1만 2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에 무려 599명이 등장하는 대작이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전쟁을 다루는 이 작품은 톨스토이를 단숨에 세계 문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공한 당사자임에도 러시아 청년의 눈에는 위대한 영웅이다. 나폴레옹의 끝없는 지배 욕망은 러시아인에게 극심한 피해를 주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빼앗지만 러시아 청년 귀족들에게 나폴레옹은 마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투사처럼 비친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 젊은 안드레이 공작은 나폴레옹을 숭배하며 그를 닮고자하는 사람이다.

안드레이는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처럼 전쟁에 나가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영웅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긴다. 전쟁이 자신을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나폴레옹’이 되고자 하는 그는 러시아 군이 극도로 불리하게 되자 심지어 기뻐하면서 나폴레옹 못지않은 위대한 행동을 보여줄 때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러시아 군을 구출하는 것이 바로 나의 사명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영웅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한 안드레이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위험한 상황을 놓쳐서는 안 될 행운으로 여길 뿐이다. 이러한 안드레이의 태도에 대해서 동료는 단지 영웅주의일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안드레이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군을 찾아서 위험한 길을 나선다. 물론 이미 질 것이 뻔한 전쟁이기에 안드레이에게도 ’죽음과 고통‘에 두려움이 없을 리 없다. 그럼에도 안드레이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은 자신의 상관을 제치고 군대를 이끄는 자신의 모습만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나폴레옹은 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이 되었을까?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속하는 작은 섬인 코르시카 출신으로 하급계층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출세를 위해서 군인이 된 나폴레옹은 장군은커녕 부대 참모도 아니었고 보케르라는 작은 도시에서 보급부대를 이끄는 하급 지휘관이었을 뿐이었다.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해서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었고 프랑스 국민들은 열광으로 보답했다. 그러자 그는 당대 강국들이 지배하던 유럽을 제패하고 최고의 권력을 손에 넣으면서 당당하게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물론 나폴레옹이 그저 총칼만 휘두르는 것에 그쳤던 것은 아니다. 그는 사실 유럽 대부분을 지배하면서 법치주의와 능력주의 그리고 시민평등사상을 온 유럽에 전파하면서 오늘 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의미에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나폴레옹을 비단 프랑스 국민들만이 아니라 적국의 사람들까지 추앙하고 숭배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베토벤마저 나폴레옹을 추앙하면서 교향곡을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자신이 내세웠던 자유사상을 스스로 짓밟고 구시대의 산물인 황제의 권좌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베토벤이 분개하며 악보에 썼던 ‘보나파르트를 위해서’라는 문구를 지워버린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다.

안드레이 역시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큰 공을 세웠던 전투를 모델로 자신도 이에 못지않은 승리를 얻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는다. 안드레이는 오직 영웅이 될 기회를 놓칠까 노심초사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승리를 자랑하는 한순간을 위해, 나는 아버지와 누이와 아내를 지금 당장이라도 벌릴 수 있다.’는 생각마저 한다. 결국 세상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안드레이는 부상을 입고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안드레이는 의식을 되찾는 순간 이렇게 중얼거린다. “어째서 지금까지 이 높은 하늘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겨우 이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하다.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모든 것이 공허하고 모든 것이 기만이다.”

안드레이는 자신이 영웅을 흉내 내는 동안 무엇을 잃었는가를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살고자 한 삶이 사실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영웅이란 기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음을 말이다. 이러한 안드레이 모습에서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살아왔고 내일도 살아갈 삶의 원천이 몇 사람의 영웅의 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는 톨스토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안드레이가 영웅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실 극복해야 할 우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톨스토이의 있어서 역사를 움직이는 주인공은 나폴레옹과 같은 몇 사람의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웅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보는 영웅사관은 공상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톨스토이에게 나폴레옹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쫓으며 ‘냉담하고 천박한, 남의 불행에 행복해’하는 너무나 ‘찌질’한 사람일 뿐이다. 같은 이유에서 톨스토이는 소설 속에서 특별한 영웅을 만들거나 특정한 인물을 미화하지 않는다. 안드레이를 비롯해서 소설 ‘전쟁과 평화’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은 제각기 좌절하면서도 성장하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위대함의 부질없음”을 깨닫는 사람들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영웅도, 세상의 환호와 평가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알기 위한 노력과 그 만큼의 성장이기에.



심옥숙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로 박사를 마쳤다. 이 논문은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대학강의와 함께 통합적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는 시민의식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형식의 시민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동명동에 자리한 동네책방 ‘심가네박씨’를 운영중이다. 저서로는 ‘Der Tanz bei H. Heine’ ‘괴테의 생각을 읽자’ ‘다시 읽는 서양철학사’(공저) ‘철학 개념 용례 사전’(공저) 등이 있다.



집필하는 톨스토이 모습
톨스토이 생가 집필실
톨스토이 생가 집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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