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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반성이 세상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도구
2018. 09.19(수) 16:02확대축소
죽음에 대한 반성이 세상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도구





59. 죽음에 대한 긍정의 시대



정의석





#죽음은 자아의 소멸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지요? 혹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면 얼마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지요? 아동들은 자기(self)에 대한 개념, 영속성의 개념 등이 생기면서 다소 막연하지만 생과 사에 대한 구분이 가능해진다. 이때가 되면 아이들은 “엄마 오래 살아!”, “엄마 죽으면 안 돼!”와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이때 어른들은 아이들이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한다. 어떨 때는 “엄마는 안 죽어, 네 곁에 영원히 있을 거야.”라고 안심을 시켜준다. 그 불안한 기간이 지나간 후 부모들은 죽음의 개념을 다시 떠올리지 않은 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정말 죽음은 이렇듯 부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가 삶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일까?

죽음은 자아의 소멸, 한 개체의 영원한 사라짐이다. 이러한 상상 자체가 두려움과 공포를 줄 수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정말 이승이 좋은 것일까? 아무리 고통스럽고, 무가치하고, 지루하더라도 생 자체는 가치 있는 것일까? 내가 아무런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애니메이션 중 ‘싸우는 사서’는 인간이 사후에 한 권의 책이 된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은 책을 모아놓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게 된다. 당신은 어떤 책을 좋아하겠는가? 좋은 경험만이 모아져 있는 책, 아니면 고통스러운 경험이 다수인 책 중에서 어떤 책을 고르겠는가? 물론 그 어느 한 가지 측면만이 전부인 책은 없을 것이다. 한 젊은이가 자신의 이기적 행복을 위해 살고, 그가 결국 죽게 되었다. 그와 같은 세력은 한 사람이 그 젊은이의 사후 변화된 책을 보면서 요즈음 사람들은 즐거움이란 참으로 천박하다는 한탄을 한다. 그 한탄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 한 가지는 말 그대로 천박한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는 것일 것이다.



#행복은 찰나의 전후에 이어진 시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예를 들어 ‘먹방’은 가끔은 즐거울 수 있지만 과하면 천박해지는 즐거움이 아닐까? 두 번째는 온통 즐거움으로만 가득 찼다는 점에서 천박하다고 했으리라 추측한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고통과 그에 대한 극복, 어떨 때는 깊은 좌절과 흔쾌한 수용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의 어두운 면이 없었던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행복의 순간을 경험하거나 소유할 수 있을까?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의 시간은 평생을 합쳐도 한 달을 넘길 수 있을까? 목표에 도달한 순간만을 고려한다면 합격의 그 짧은 순간, 성취를 이룬 그 짧은 순간, 만찬이 입에 처음 닫는 그 순간, 사랑하는 이와 입을 맞춘 그 순간, 멋진 풍광을 바라보는 그 순간 등. 그 순간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시간, 그리고 그 순간의 시간이 지난 후 오랫동안 지속되는 소멸의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무가치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찰나의 행복한 순간을 위해 산다고 여기지만, 우리의 행복은 그 찰나의 전후에 이어진 시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선물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반성


#죽은 이에게 죽음은 거룩한 과정

소멸에 대한 공포는 죽음과 관련된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예식마저도 슬프고 공포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영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에서 딸 쿄코와 그의 아버지는 엄마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엄마는 그 고을의 무속인이다. 엄마가 병원을 퇴원하고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고을 사람들은 그녀의 집에 모여 악기를 연주하고, 음악을 연주한다. 풍요롭고 안락한 분위기 속에서 엄마는 죽음을 맞이한다. 쿄코의 아버지는 엄마와의 만남과 이별을 딸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엄마는 바다가 만든 파도와 같다.”고. 파도의 바다와 연결되어 있고,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아내는 이 세계의 신비함과 만난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 가족에게 죽음은 당연히 슬픈 과정이었겠으나, 죽은 이에게 감사와 고마움 그리고 다시 세계로 돌려주는 거룩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서울시립동부병원에서 ‘생전 장례식’이라는 행사를 했다고 한다. 노년 유니언 활동을 하던 정병국씨가 전립선암 말기판정을 받고 생전에 그가 만나고 싶은 분들을 초대해서 함께 노래하고,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나누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장례식이 더 필요할 것이 아닐까? 죽은 이는 외로움 속에서 생을 마치고, 유족과 조문객은 조의금을 바치는 형식적 장례식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원히 가슴에 남을 감동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장례식을! 어쩌면 죽음, 장례식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부정적이었던 것일 수 있다.



#생의 반성은 죽음이 전제돼야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들은 인간의 죽음을 부러워한다고도 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불사 혹은 상당히 긴 수명을 원하곤 하는데 말이다. 우리가 생을 반성하는 것은 죽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실천되기 어렵다. 우리는 죽음을 가정하면서 자신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반성한다. 그리고 사후 자신의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고, 삶을 가치 있게 살려한다. 삶이 숨 쉬는 것과 내뱉는 것이 전부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죽음을 외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에서 죽음에 대한 긍정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어쩌면 이기적이고 적대적 세계, 환경파괴가 절제되지 않은 이 세계는 죽음에 대한 돌아봄이 부족했기에 생긴 현상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경건한 반성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도구이다.





정의석은



‘지역사회심리건강지원그룹 모두’대표로 활동 중이다. 아동과 청소년의 심리적인 적응, 학습과 진로 문제 등에 대해 현장에서상담을 해오고 있다. 청년들을 위한 무료집단상담을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국내최초로 진행했고 ‘미래학습상담센터’를 비롯해 교육청 컨설팅장학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 상담심리문제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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