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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의 상징 조르주 브라상
2018. 09.19(수) 00:00확대축소
세트 전경
삶의 고통에 대한 투명한 시선, 프랑스 대표 뮤지션으로



휴머니스트 조르주 브라상













조르주 브라상


세트 시절의 브라상과 친구들


세트 시절의 브라상과 친구들




지난 2006년 세트인들은 생 클레르 산 북쪽 토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세워진 조르주 브라상 기념관




프랑스 샹송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사랑 받은

가수이자 작곡가,

무정부주의자이자

자유를 사랑한

보헤미안이자 음유시인







조르주 브라상은

프랑스에서

영국의 비틀즈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거리에선

그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고

집에선 대를 물려가며 듣는다

그의 달콤 쌉사름한 가사는

프랑스에서

최고의 시로 뽑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착한 안주인, 별 말 없이

나에게 빵을 먹여준 사람

그때, 그 시절, 나는 배고팠지요.

그대는 부엌을 열어주었답니다.

그때 그 동네 사람들은

굶는 날 보고 웃어 댔지요…

빵 조금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그러나 그건 내 몸을 데웠고

내 마음속에 아직도 타고 있지요

한바탕 잔칫날처럼요.

1954년 3집 앨범에 수록된 오베르뉴 사람을 위한 노래 중에서









이태백도 솔로몬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지식인들 철학자들, 현자들은 말했다. 고난은 누가 친구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게 해준다고. 프랑스 샹송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사랑 받은 가수이자 작곡가, 무정부주의자이자 자유를 사랑한 보헤미안이며 음유시인 조르주 브라상. 그의 곁에는 고난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 가난한 시인을 그의 친구들이 구해냈다. 그리고 조르주 브라상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인이 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 ‘쎄트’의 세례

조르주 브라상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의 중앙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 세트(Sete)에서 태어났다. 도심의 절반 가량이 수로로 연결 되어 있어 작은 베니스라고도 불리는 세트는 프랑스 지중해에서 가장 먼저 어항이 활성화 된 곳이다. 주변의 부지그(Bouzigues)라는 곳에서 양식되는 굴은 남불 최고의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게다가 세트는 일 년에 300일 이상 해가 지지 않는 곳이라 햇빛을 찾아 철새처럼 떠다니는 북부 유럽인들에겐 최고의 지상낙원인 셈이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인가. 세트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했다. 최고의 샹소니에 조르주 브라상과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 두 문장으로 전세계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상징주의 시인 폴 발레리는 물론 아비뇽 축제를 창시한 장 빌라르,세계적인 플라멩고 기타리스트 마니타 드 플라타,80년을 대표하는 자유 구상파의 대표 화가 에르베 디 로사가 이곳에서 태어났고 리옹에서 태어나 세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자유구상주의의 리더였던 화가 로베르 콩바가 있다.



음악 좋아하는 어머니 덕에 풍부한 세례



조르주 브라상은 어머니 엘비라 다그로사와 아버지 장 루이 브라상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재즈와 블루스를 좋아해 항상 LP를 즐겨 들었다고 전해진다. 브라상은 다섯 살에 이미 200여곡을 알 정도로 음악을 즐겼다. 어려서 브라상은 공부엔 별로 취미가 없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데엔 재주가 있었다. 샤를르 트레네, 레이 방튀라, 벵상 스코토의 음악에 흠뻑 빠져 지냈다. 그러던 브라상에게 그의 어린 예술 세계가 전환점을 맞는 계기가 생긴다. 폴 발레리도 다녔다던 세트 공립학교에서 알퐁스 보나페라는 스승을 만난 것. 권투선수 출신이 시를 쓰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머리를 갸우뚱 할 일이지만 경험이 없다는 건 오히려 편견 없이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브라상은 그를 보고 신선한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보나페는 외친다. ‘이런 것이 음악이고 이런 것이 바로 시라고.’ 보들레르의 시에 음악을 입힌 뒤파르크의 ‘여행으로의 초대’를 들려 주면서 말이다. 보나페라는 스승 덕분에 조르주 브라상은 시를 쓰고 거기에 곡을 붙인 위대한 샹소니에로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 스승이 아니었으면 또래 아이들과 사고나 치고 유행가 가사나 끄적였을 녀석을 시인으로 만든 것이다. 위대한 스승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상의 고통과 환희, 대중 사랑받고

덥수룩한 콧수염, 초점 없는 눈빛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 보이는 표정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사내가 있다. 수많은 샹송을 들었지만 조르주 브라상만큼 따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가수는 없는 듯하다. 그의 시들은 그의 인생 그 자체였다. 그가 받은 모든 사랑과 우정, 은혜를 감사했고 또한 그가 겪은 전쟁과 참혹한 세상 속 우리들을 그려냈다. 프랑스 샹송의 역사는 조르주 브라상 전과 조르주 브라상 후가 있다고 말한다. 심금을 울리는 주옥 같은 가사와 내용의 진정성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사진2 조르주 브라상고향 세트에서 사고를 치고 자퇴한 후 파리로 상경한 조르주 브라상은 수도도 전기도 나오지 않고 터키식의 재래식 화장실 하나 달랑 달려있던 시멘트 움막 같은 집에서 숙모 친구 부부인 잔과 마르셀과 함께 지내게 된다. 군대로 복귀하지 않아 탈영병 신세로 다섯 달을 숨어 살던 브라쌍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브라상은 후에 큰 돈을 벌게 되었을 때에도 그들과 함께 지냈고 그 인연은 22년이나 이어졌다. 브라상은 이런 고마운 마음을 아름다운 곡, ‘오베르뉴의 사람들’, ‘잔느’ 같은 작품으로 남겼고 ‘오베르뉴의 사람’들은 브라쌍의 최고 히트곡 ‘친구들 먼저’를 제치고 최근 가장 사랑 받는 노래로 꼽혔다.

재능 아낀 친구들의 아낌없는 후원

조르주 브라상에게는 전쟁 막바지에 주어진 마지막 휴가에 복귀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피에르 옹테니앙트 같은 친구도 있었다. 단단하기가 바위 같아 지브롤터라 불리던 친구. 먼저 휴가를 떠났던 이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다음 휴가조는 휴가를 떠날 수 없는 규정이 있었다. 자신의 휴가를 기꺼이 반납할 수 있는 그런 친구. 포기한 것이 휴가가 될 지 목숨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그 불확실한 현실에 그에겐 이런 친구들이 있었다. 깊은 우정을 바탕으로 의연함과 절제, 그리고 품위로 똘똘 뭉친 그런 친구들 말이다.후에 친구들은 한 겨울에도 무명으로 된 신발을 신고 노숙자처럼 옷을 두르고 다니는 브라상을 보면서 정말로 거지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고 전해진다. 조르주 브라상의 재능을 믿었고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했다. 이런 대가 없는 크나큰 우정에 대해 브라상은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 모이는 자리에는/때로는 빠지는 놈들이 있지./배위에서 한 놈이 보이지 않을 땐/죽었기 때문이라네./백 년이 지나도, 빌어먹을!/여전히 그 놈은 그립지./수많은 배를 나는 타보았지만/꿋꿋이 나아가는 오직 하나, 뱃머리를 절대로 돌리지 않고/시끌벅적 큰 바다를 소리 없이 항해하는 이 배는,/친구들 먼저, 라 불린다네. 친구들 먼저라고.

“친구들 먼저” 중에서



백방으로 브라상을 알리던 친구들 덕분에 그를 대중성 있는 예술가로서 성공을 확신했던 카바레 쉐 파타슈의 여주인 파타슈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후에 에디뜨 피아프, 샤를르 트레네, 이브몽탕, 쥘리에트 그레코과 세르주 겐즈부르를 데뷔시켰던 자크 카네티가 조르주 브라쌍의 공연을 보게 된다. 그의 공연을 본 카네티는 이렇게 말했다. “ 시적인 텍스트는 아름답기 그지없고 음악은 단순했으나 멜로디는 정말 풍부했다. 목소리는 강력하면서도 리드미컬했고 따뜻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유머를 지녔고 완전히 독창적인 인물이었다. 브라상은 샹소니에의 진정한 계승자임에 틀림없다 느꼈다“/



프랑스 최고의 뮤지션으로

조르주 브라상은 프랑스에서 영국의 비틀즈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은 거리에선 그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고 집에선 대를 물려가며 듣는다. 그의 달콤 쌉사름한 가사는 프랑스에서 최고의 시로 뽑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그의 시들은 중세의 어휘들을 가져와 썼고 전통적인 프랑스 시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번역하기 쉽지 않은 언어적 장벽들이 있었음에도 그의 음악들은 일본이나 이스라엘, 미국, 러시아, 호주,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에서도 1000곡이 넘게 리메이크 되었고 전 세계 20개국의 언어로 번역 되었다. 브라상의 음악을 리메이크 했던 일본 여가수 코시지 후부키는 그의 노래로 72주 이상 1위를 하는 영광을 누린다. 브라센은 250여곡을 작곡했으며 그 중 200곡은 음반으로 만들어졌지만 50여곡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나는 이 생을 떠나면서 어떤 한도 없습니다. 치통도 이젠 없을 겁니다. 전 이제 공동묘지에 묻힙니다. 자 이제 공동묘지로 가야 할 시간이 왔어요.” 라고 그는 유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라상이 타계한지 25년이 지난 2006년 세트인들은 생 클레르 산 북쪽 토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조르주 브라상 기념관을 세웠다. 브라상이 불렀던 ‘나쁜 평판’은 좀 도둑질을 일삼던 어린 철부지가 아닌 예술이 되어 시가 되어 음악이 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게 되었다.

uglykid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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