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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과 반성적 태도
2018. 09.04(화) 17:04확대축소
모든 위대한 진리는 허점을 갖는다



58. 더 나은 삶과 반성적 태도

박해용(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소장)



#정말 옳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올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운 날이었다. 무더운 날에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았고 시간과 기온은 변했다. 8월 말 시원해진 바람을 느끼면서 그 더웠던 여름날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여름을 이겨냈다고 말할 수 있다. 여름을 각자의 방법으로 보낸 것처럼, 우리의 생(生)도 각자가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살아왔고, 그 거대한 흐름 안에서 ‘나’라는 한 개인들도 나름 열심히들 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항상 의문이 든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나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낮은 고용의 수치가 불안감을 주지만, 나름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면서 열심히 그리고 옳게 살려고 한다. 그리고 기준을 맞춰 살면서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거나 변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보면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옳은 것에 따라서 살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회찬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남기고 스스로 최후의 결정을 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에 이제 모든 것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변명하면서 법적 처벌을 피하려 한다. 이 두 사람이 살아왔던 방식의 바탕에도 어떻게 사는 것이 옳게 사는 것인가? 라는 물음이 놓여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옳게 사는 것인가? 라는 매우 어려운 물음 앞에 서게 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하는 불안한 의자



옳게 사는 것을, 정의(正義)를 찾는 문제에서부터 해결하려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BC 470년~399년)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철학자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 철학자로서 옳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관점에서 그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은 뜻이 있겠다. 우선 그가 살았던 시대에 힘을 가졌던 많은 요소들 중에서 세계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다. 세계는 변화의 연속이며 심지어 변화 그 자체라고 먼저 생각한 사람이 헤라클레이토스(BC 535년 ~ 475년)이다. 그는 세상 만물이 변화하며 심지어 사람 자체도 끊임없이 변하며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과의 관계도 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동일한 강물 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만물이 변화한다는 생각은 실로 놀라운 통찰의 결과이다. 당시의 생각하기로서는 매우 앞선 생각이다. 오늘날까지 많은 부분에서 인정되고 있는 하나의 ‘위대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위대한 진리는 허점을 갖는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의 변화성은 변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 자신이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동일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출했다가 찾아가는 집이 자기의 집과 동일해야 했고, 집에 들어가 앉는 의자도 동일한 의자여야 했다. 심지어 그는 길은 하나의 같은 길로서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동일한 길이라는 주장도 했다. 그는 변화성을 주장했지만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없었으리라. 그는 자신이 앉아야 할 의자는 어제처럼 자신이 앉으려고 할 때마다 일단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아마 하루도 살 수 없지 않았을까?





사람은
참된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



#소크라테스의 엉뚱한 생각,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게 고민하던 소크라테스는 변화하는 것에서 기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 없이 흐르는 변화와 모순 속에서도 불변의 진리와 실재를 찾으려 했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옳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곧 그 유명한 물음, ‘정의(正義)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의 물음 이후 정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 불변의 실재로서 끝없는 논쟁의 한 복판에 서 있다. 그런데 이 물음을 제시한 소크라테스 자신도 우리에게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는 물음의 정의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었지만 애매한 응답으로 궁금증만 더하게 했다.

삶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올바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올바름에 관한 지식을 추구한다. 동시에 여기서 파생된 문제가 지식을 배우고 전달할 수 있는가, 아니면 각자가 스스로 지식을 깨달아야 하는가 라는 난해한 물음으로 연결된다. 참된 것을 배우고 알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가지고 참된 것에 관한 탐구를 시작한 소크라테스는 도중하차를 하게 된 셈이다. 소크라테스 이후, 그 참된 진리, 불변하는 절대 불변의 진리는 우리 인간이 도달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아닌가?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래도 사람은 부단히 참된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자신의 삶을 통하여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폴리스의 판결에도 따른다. 끊임 없이 반성하며 진리를 찾아가는 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고 있다.



#내가 선 자리에서 가장 최선의 것이라고 믿는 것에 대하여 반성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와 본다. 세상을 단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사는 동안 보다 더 올바른 방식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이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위로 만든다. 이때 우리는 스스로 깨달았던 지식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이든 그것은 이제 내 지식이 된 것이다, 내 지식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지식이다. 내가 아는 이 지식이 힘을 가지려면 확신과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나의 실천과 행위로 연결된다. 자신의 앎에 대해서 신뢰한다는 것은 그 앎이 소크라테스가 찾았던 참된 앎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니 자기의 앎에 대한 신뢰는 곧 앎의 기준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에 근거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참된 앎에 기초하고 있는가? 이렇게 묻고 고민하는 삶이 나의 관점을 높이는 방식을 만들어낸다.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한다.







<사진설명>

사진1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변한다는 말을 남기고 대립과 투쟁이 세상을 이끌어간다고 주장했다.

사진2 평등한 표현의 자유, 소외계층의 권리를 일상에서 넓히려고 했던 고 노회찬 의원은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노력했던 정치가이다.

사진3 붕대로 눈을 가진 정의와 질서의 여신 테미스





박해용은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한 후,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교수로 한중일 3국의 의사소통 구조를 연구했다. 인문학 강연과 시민 인문학 공동체 ‘인문지행’에서 철학 강의를 하며, 동네 책방 ‘심가네박씨’를 공동 운영한다.

backdoor2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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