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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세상에 파묻힌 여린 숨결들
2017. 12.12(화) 16:53확대축소
박제된 세상에 파묻힌 여린 숨결들

- 김숨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끈질기게 하나의 소재를 붙들고 작품을 빚어내는 소설가 김숨.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우리 시대를 어둡게 덮고 있는 소외된 그늘이다. 그는 힘없는 약자의 고통과 이 땅의 희미해진 상처를 또렷이 복원해서 보여준다.

단편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에서 김숨은 약자의 자리에 동물을 놓고 이야기한다. 철저히 현실에 발붙이고 있으면서 어렴풋한 환상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는 여섯 단편들의 소재는 쥐, 염소, 자라, 벌, 노루, 나비이다.

쥐잡기 전문가들의 폭군 같은 행보를 그린 ‘쥐의 탄생’, 해부용 염소를 기다리는 실험실 학생들의 중얼거림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없다는 걸 알면서 사라진 자라 농장 아들을 찾아 저수지 물속을 뒤지는 ‘자라’, 벌을 치며 벌처럼 살아가는 삶을 야생의 아름다움으로 채색한 ‘벌’, 노루 사냥 가는 도배장이들의 폐쇄된 세계를 담은 ‘피의 부름’,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있지도 않은 나비를 잡는 아이의 이미지가 강렬한 ‘곤충채집 체험학습’.

특이하게도 소설에서 동물은 거의 등장나지 않는다. 동물의 특성은 실감나게 묘사되지만 이것은 인간의 마음에 박힌 형상일 뿐이다. 애벌레를 키우자는 아들과 기겁하는 엄마에게서 알 수 있듯, 사람의 생각에 투영된 모습이나 필요수단으로만 그려진다. 보양식 재료로, 포획 대상으로, 돈의 가치로.

그리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환영들.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이 아이와 어른 사이의, 약자와 강자 사이의 경계라는 듯, 봤다는 사람과 그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 나온다. 봤다는 건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이 아홉 글자 속엔 단편집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 머릿속 지식으로만 말할 뿐 소설에서 동물은 나오지 않고, 동물을 생명체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다.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여기 없는 동물은 박제된 세상에 파묻힌 여린 숨결 같다. 작가는 동물을 감춤으로써 공존하지 못하는 불평등한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 걸까.

작품들에서 동물과 아이는 인간의 이기심을 도드라지게 한다. 어른의 맞은편에서 이들은 아직 순진성을 잃지 않은, 인위적 질서에서 벗어난 자연을 상징한다.

이를 강조하려고 작가는 동물과 아이를 섞는다. 갓난애와 쥐, 아이와 나비, 아들과 자라는 한순간 구분할 수 없이 겹쳐진다. 특히 ‘벌’에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벌이 되고, 사회가 정한 규범과 무관히 벌의 생을 산다.

사람이 동물과 일체가 된 풍경은 기이한데, 여기서 생명에 대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또, 인간의 차가운 탐욕과 무력한 한계를 의식하게 된다.

“나는 인간이 산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싶다. 자신의 몸에서 난 자식조차 어쩌지 못하는 인간이, 온갖 나무와 풀과 벌레와 짐승들로 넘쳐나는 산을 갖는다는 것이.”(‘벌’에서) “인간이 아닌 새나 물고기, 개 같은 짐승들도 벌을 받을까? 죄와 벌의 원리가 짐승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될까? 수면 아래로 도로 가라앉으며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자라’에서)

“염소 해부 실습의 목적을 뭐라고 써야 하지?”라는 물음에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는 거라고 쓰면 되지.”라는 대답은 우리의 이중성을 꼬집는 대목이다.

섬세한 깊이와 촘촘한 문체로 김숨은 상반된 세계의 경계면을 보여준다. 강자와 약자, 문명과 야생,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그 경계점에서 우리는 인간 위주의 행동이 그들 법칙대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엄청난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이기도 한 ‘인간’의 냉혹함을 깨우치게 된다.

backdoor2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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