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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물성 시인의 정겹고 순한 오지랖
2017. 11.28(화) 15:37확대축소
순식물성 시인의 정겹고 순한 오지랖

- 박남준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가을 단장에는 처마 끝에 걸어놓는 곶감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가을 푸른 하늘 아래 주홍빛 고운 꽃등을 걸어 세상을 환히 밝히는/ 감나무 한쪽 풍경을 토도독~ 떼어다가/ 주렴처럼 주렁주렁 곶감을 건다/ 혼자 감을 깎고 혼자 감을 엮어 걸어놓았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즐거워할 것이다/ 한 줄에 다섯 개씩 엮었는데 주인 몰래 따 먹으라고/ 몇 줄은 개수를 한두 개씩 붙여놓기도 했다”

이웃을 위해 까치밥처럼 곶감을 한두 개씩 더 붙여서 걸어놓는단다. 홍싯빛 넉넉한 여유로움. 마음이 그대로 한 편의 시다.

지리산 자락에서 장작 패고 아궁이에 불 때며 사는 버들치 박남준 시인. 나직한 일상이 차곡차곡 포개진 산문집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는 자연과 뒤엉켜 아예 자연이 되어버린, 순식물성으로 사는 시인이 보낸 사계의 꽃편지다. 인터넷카페 ‘악양편지’에 올린 글을 발췌하여 엮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꽃타령이다.

복수초, 홍매청매, 앵초꽃, 비파꽃, 가시연꽃, 달래꽃, 옥잠화, 토란꽃, 용담꽃. 꽃들과 맺은 재미난 인연들이 연달아 등장하는데, 사연들 사이사이엔 어김없이 꽃사진이 실려 있어 실시간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꽃뿐인가. 호박 가지 고추, 의자에 앉힌 마당의 빗자루, 나뭇더미 장작, 텃밭 벌레들, 마당에 찾아온 딱새, 정렬한 항아리들, 돌들. 사진 찍힌 주인공은 많다.

마침표 없는 글들은 짤막짤막 시 같다. 의성어, 의태어, 물결무늬, 웃음부호 섞인 유머와 감성 넘치는 글들, 그 틈에 낀 시인의 시가 너무 영롱해서 아, 하는 탄성이 난다.

시인에게 꽃은 살아 있는 대상이다. 완주에서 악양으로 이사 온 ‘애’는 ‘현호색’이고, 밤새 불 켜놓아 전기세를 걱정시킨 ‘범인’은 ‘노랑 상사화’다. 지리산에서 처음 만나 무려 이십여 년 만에 상봉한 ‘그녀’는 ‘산작약’이고, 남해에서 시인의 감언이설에 혹해 따라온 ‘아가씨’는 ‘흰해당화’다.

그렇게 꽃과 일상을 숨 쉬는 시인은 안 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은방울꽃 작은 방울 소리, 노랑턱멧새 중얼대는 소리를 듣고 전한다. 또 그렇게 꽃이 피고 이우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문득 시인은 자신을 성찰한다. 꽃이 걸어온 뒤편의 길을 떠올리고 인생을 깨친다.

“눈새기꽃 올해도 한 송이가 먼저 피었다/ 그 뒤를 따라/ 다시 한 송이가 길을 따라 나선다/ 그래 환하다/ 길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란다” “고마운 일이다/ 땅을 딛고 살려는 일이란 바로 이런 시간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지/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싱싱한 채소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시골에 산다는 작은 기쁨이란 몇 발자국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이런 맛을 즐길 수 있으며/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내놓을 수,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지”

구절초꽃송이를 쪄 채반에 널고, 밥상 반찬그릇에 꽃과 나뭇잎을 놓아두는 여린 심성의 시인. 세모꼴 어린 가시연잎 앞에서 “야호” 소리치는 천연색 마음을 지닌 시인. 세월호 영혼들을 기려 흰동백나무를 심고, 네팔에 조금씩 후원금을 보내고, 고양이 산모에게 미역국을 건네고... “입으로 선함을 꾸며 다른 생명을 기만하지 않”길 바라며 세상을 보듬고 있는 시인의 정겹고 순한 오지랖이 고맙다.

책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팔색조처럼 희귀한, 한 시인의 천진난만한 숨결이 들어있다. 아아, 바짝 우리 곁에서 매화 향기 뿜어내는, “뾰족을 딛고 펼쳐진 하늘”처럼 푸르디푸른 숨결이라니! (2017/11)

backdoor2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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