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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벽’ 태우며 물드는 수몰 고향의 저녁놀

<14> 댐, 수몰고향, 비나리: 물은 흘러야 한다
2017. 11.15(수) 00:00확대축소
옛마을 다리가 드러난 나주호
드들강에서 비라본 해망산
전남대 비나리패의 세번째 글마당
전남대 비나리패의 세번째 글마당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댐들이 1만7천여 개가 있다. 저마다의 용도로 물을 가두고 있다. 물면은 하나같이 푸르게 일렁인다. 그러나 바닥 풍경에는 각양각색의 사연이 새겨져 있다.

산골의 작은 저수지에는 몇 다랑치의 논이 잠겨 있다. 외딴 집 한 채를 품고 있는 저수지도 있다. 그런가 하면 한 마을, 두 마을, 한 고을을 통째로 품고 있는 댐도 있다.

산과 산 사이를 막아 물을 가두는 댐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지도 위에 선을 그린다. 최단 거리의 댐으로 최대 수량을 확보하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목표다. 그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 문화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도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사람들은 그렇게도 쉽게 고향 마을까지 내어 주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진정 나라를 위한 일이었는지는 가늠할 방법은 없다. 물이 필요했는지, 댐 공사가 절실했는지도 여기서 따져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물은 흘러야 한다는 것만은 만고의 진리다.



해망(海望)과 우진(雨津)

화순군 도암면과 춘양면 경계에 자리한 산 이름은 해망(海望)이 있다. 내륙 깊은 곳에 자리한 이 산에서 바다가 보일 리는 만무하다. 바다가 보이는 산이라는 이름으로는 망해산(望海山)이 더 어울린다.

영산강 하구언이 막히기 전에 만조의 바다는 썰물을 타고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왔다. 남평읍 앞을 지난 바닷물은 드들강까지 계속해서 밀려든다. 그리고 바로 해망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바닷물은 다시 고개를 남해로 돌리게 된다. 이 산은 바다가 바라보았던 산이다. 이런 사연을 알아야 백파정(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소재) 팔경(八景)을 제대로 그려 볼 수 있다.



해망산에 밝아오는 달이요

고마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이요

덕령을 넘어오는 구름이요

입봉에 오르는 아지랑이요

운포에 가득 찬 어선의 돛이요

벽산에 들려오는 초적소리요

옥정 위로 동터오는 빛이요

천태산에서 바라보는 낙조로다.

-백파정 팔경-



이곳과 관련된 옛 시에는 갈매기(鷗)가 자주 등장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돌포강을 사이에 두고 해망산을 멀리 바라보고 있는 마을이름은 우진(雨津)이다. 근동 사람들은 우진이라는 말은 쓰지 않고 ‘비나리’라고 부른다.

우진은 큰비가 내리면 나루가 섰던 곳이다. 우리말로 풀면 ‘비나루’인 셈이다. 마을 뜻하는 ‘리(里)’와 합쳐져 비나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다.



비나리

내가 ‘비나리’라는 이름을 뜻밖에 만난 곳은 대학이었다. 시를 쓰고 싶어 찾은 시창작연구회의 이름이 ‘비나리’였다. 이들은 1984년에 ‘가자 피묻은 새떼들이여’라는 시집을 처음 묶어 냈다. 그리고 이듬해 묶어낸 ‘밥과 토지의 나라로’를 통해 대학생 문학패로는 드물게 전국적은 명성을 얻게 된다.

‘무등산 비나리’ ‘들불야학’ ‘봄비나리’는 ‘공동체시’라는 타이틀을 달고 발표되었다. 문학 특히 시는 개인의 창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통념을 대학생들이 보란 듯이 깨트리며 ‘집단창작’을 선보인 것이다.

비나리패가 세 번째로 묶어낸 시집 ‘당신은 오월바람 그대로’(1987)에는 한 편의 공동체 시가 실려 있다. 이들은 1986년 여름방학 동안에 화순군 이서면 일대를 답사했다. 동복댐 담수를 눈앞에 두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의 심정을 ‘수몰민의 노래’로 담았다. 몇 대목을 들어본다.



화순군 이서면 물염 마을,

맑은 적벽강물에 훈훈한 인정이 흘러내리고(1)



한번 떠나간 후로

돌아오지 않은 그리움처럼

쥐불 놓던 우리의 등줄기에

적벽강 따라 바람이 울었다(2)



아아,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나,

이북 사람들은 통일되면

돌아갈 고향이나 있다지만

저 시커먼 손의 물길에 빼앗긴 고향

우리는 영영 찾을 수 없네(4)



땀 흘려 일군 논배미

싱싱하게 호미질 하던 남새 밭

물속 환한 골목 여기 두고 간다

풀잎조차 잘 가소 잘 가소(5)

- 비나리패, ‘수몰민의 노래’ 부분 -



수몰을 앞둔 주민의 삶을 보둠고, 생활 현장에 다가서서 취재하고 그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집단 창작의 방식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마련이 되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면 그 효과는 더 컸을 것이다. 집단적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집단 창작의 문화적 가치는 재조명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 겹의 노을

동복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암호가 비슷한 시기에 세워지고 있었다. 손광은 시인은 주암댐 수몰민들의 심경을 ‘수몰 고향’ 연작시에 담았다. 한 편을 소개한다.



내 마음 속에

쑥냄새처럼 스며 와서

그리움으로 피는 꽃이여.

내 마음 언저리에 와서

눈부시도록 꽃 피어라.



먼 하늘 푸른 물결 소리로 와서

빈 가슴 채울 때까지

텅 빈 들녘에서 불타는 강이여.



솔바람소리 꽃물결 흘러 와서

동구 밖 가득 채운 바람에 묻혀

햇살이 더욱 뚜렷이

내 마음 밑둥까지 바라보고,

마음타는 지순한 노을이여.



내 마음 속에

드린 물처럼 스며와서

나를 깨우고

눈부시도록 꽃 피어라

- 손광은, ‘수몰 고향(8) ’‘저녁노을’ 전문 -



수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깊숙한 과거에 잠겨 있다. 오늘 저녁노을은 그 단단한 시간의 벽을 태우면서 물든다. 시간의 벽이 타고, 고향 마을 위로 넘실대는 물도 불사른다. 하늘의 노을과 물면에 일렁이는 노을 그리고 눈시울을 붉히는 노을, 이렇게 수몰고향을 앞에 둔 수몰민의 노을은 세 겹으로 물든다.

이 노을은 고스란히 마음으로 스며든다. 수몰 고향과 함께 마음에 갇힌 나를 깨워 순간이나마 눈부신 꽃으로 피어나게 한다. 수몰의 상처와 아픔이 그리움이 되는 순간은 아주 짧다. 그렇지만 그 그리움은 누구도 피워내지 보지 못한 꽃이 될 수 있다는 위안을 시인은 전하고 싶은 것이다.



바람

올 가을의 가뭄이 극심했다. 옛 마을의 다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나주호를 지나오는 길에 담은 한 장의 사진 덕분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물관리 일원화’가 정부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물보다는 ‘관리’에 방점을 둔 사람들은 당연히 국토부로 일원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물’에 방점을 둔 사람들의 바람이 이루어져 ‘환경부’로의 일원화가 추진되고 있다. 저항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국토부에는 어디에 지도를 놓고 어디에 물을 가둘까만 고민하는 전문가들이 백 명도 훨씬 넘는 모양이다. 이들의 업무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으면 좋겠다. 대신 이 사람들은 한 명도 빼놓지 말고 모두 환경부로 자리를 옮겼으면 좋겠다.

이제 지도를 놓고 어디에 갇힌 물을 먼저 터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물을 가둬두는 것 말고는 별 의미가 없는 저수지, 댐을 콕 콕 짚어내는 데 그들의 경험이 쓰였으면 좋겠다. 지도에서 댐을 하나씩 둘씩 지우는 일이 시작되는 그 첫 해가 올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dk5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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