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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만물지중에 ……
- 자연과 삶, 문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완도 정도리 구계등
2017. 11.01(수) 17:26확대축소
정도리 구계등 일출
전동진의 문학읽기





‘천지간’ 만물지중에 ……

- 자연과 삶, 문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완도 정도리 구계등







아홉 계단, 아홉 구비의 꿈

완도의 자연 중에서 가장 이름이 높은 곳은 아마도 명사십리일 것이다. 삶이 넘실대는 공간으로는 장보고의 꿈이 넘실대는 완도항을 들 수 있다. 천혜의 항구는 10여 리에 걸쳐 있다. 자연 10리와 생활 10리가 공존하는 완도는 가장 억세고 부드럽게, 가장 부드럽고 억세게 삶과 자연이 공존하는 장소이다.

삶과 자연의 십리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 정도리 구계등이다. 이곳에 닿는 길은 두 갈래다. 완도대교를 건너 곧바로 달려 나가면 완도읍을 거쳐 정도리에 닿을 수 있다. 다른 한 길은 완도대교를 건너자마자 당인리 쪽으로 길을 틀어 오른편 해안선 길이다. 10분쯤 달리면 정도리에 다다를 수 있다.

정도리를 스물일곱 해 만에 찾는 길이다. 가는 길에 ‘갈문리’에 꼭 들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오른편으로 길을 잡았다. 해안도로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지점에 자리한 마을이름이 눈에 들었다. ‘대문리(大文里)‘! 갈문리를 찾아가는 길이라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다. 광주 유학길을 오가며 그 친구는 이 마을 이름이 제일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흩뿌리는 날씨는 기억의 저편을 흐릿하게 했다.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사나흘을 갈문리라는 마을에서 보냈다. 갈문리 교회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한, 지붕이 붉은 집에서 머물렀다. 대학 1학기를 보냈을 뿐이었지만, 한 20년 쯤 함께 지낸 것처럼 친해진 벗의 고향집이었다.

그 친구는 제 마을의 이름이 ‘갈문리’라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칡 갈(葛)자를 쓰기도 하지만 목마를 갈(渴)자를 쓰는 마을에 시를 쓰는 사람이 가당하겠느냐는 것이다. 싱거운 소리라면 대수롭잖게 넘겼다.



갈문리 연가

하루는 버스를 타고 한 20분 쯤 달려 닿은 정도리에서 한 나절을 놀았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찾는 사람이 드물었다. 우리는 수영복도 없이 쫄래동이들처럼 물놀이를 하고 놀았다. 그 친구는 그로부터 한 열흘쯤 후에 영영 우리 곁을 떠났다.



갈문리에

여름이 오기 전에

나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가을엔

슬픈 눈에 긴 생머리

가을 여자를 만나야 한다

스물여덟

죽음의 부활과

한 삶의 시작을 위해



갈문리에

여름이 오면

나는 가을을 산다

- 전동진, ‘갈문리 연가’- 서시



정도리 구계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의 무대가 되면서부터일 것이다.



천지간
이상문학상 천지간
윤대녕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은 1996년에 발표되어 그해 이상문학상을 받으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스무 살 여름 하루가 머물렀던 정도리에 얼마나 와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대학 강단에서 ‘문학과 여행’을 강의할 때도 이 소설과 정도리는 빼놓지 않았다. 그 정도리 구계등에 스물일곱 해 만에 닿게 된 것이다.

구계등은 공동체의 이야기 녹아 있는 장소이다. 일본 강점기 일본에 의해 간척지가 조성되었지만, 염분이 많은 땅을 농지로 바꾸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지역민에게 적은 소작료를 받고 농토의 개간을 맡겼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온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일제의 농토를 사들였다. 구계등에는 정도리 공동체의 꿈이 넘실댄다.

구계등의 전설은 이렇게 이루어진 공동체의 꿈이 좀 더 크게 확대되기를 바라는 바람이 스며있다. 밀물과 썰물 사이에 구계등은 3-4개의 계단이 드러났다 잠겼다 한다. 청환석 아홉 계단이 모두 드러나면 ‘천지개벽’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있다. 아홉은 ‘꽉 찬 수’다. 아홉 다음은 ‘영(零)’이다. 아홉 계단을 이루고 있는 청환석은 둥글둥글 ‘영(零)’을 닮았다. 9와 0의 협화음, 불협화음이 오늘도 구계등에 울리고 있다.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은 외숙모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에 온 화자가 터미널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달고 있는 한 여인을 좇아 무작정 완도행 버스에 몸을 실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구요? 믿을 수 없겠지만 걸어서 왔습니다. 물론 읍내 터미널에 내려 바로 군내(郡內)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었지요. 그래요,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폭설이었죠. 하지만 그 여자가 터미널에서부터 줄곧 여기까지 걸어왔던 거예요. 네, 한 시간도 넘게 걸리더군요. 글쎄요, 제가 왜 그 여자의 뒤를 따라왔는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따라온 겁니다. - 윤대녕, ‘천지간’ 첫 부분



그 여인을 따라 도착한 곳이 바로 정도리 구계등이었다.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기 위해 구계등을 찾는다. 여인의 복중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밤이 지나 여인의 그림자가 죽음 쪽에서 삶으로 옮겨지면서 소설은 끝난다.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새벽에 함께 있던 여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물론 어디서 온 여자인지 무얼 하는 여자인지도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인연이 되면 또 만나겠죠, 라며 사내가 먼저 등을 돌려 횟집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장님처럼 꺼이꺼이 길을 짚어 가며 홀로 그 곳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 윤대녕, ‘천지간’ 마지막 부분

윤대녕
이 소설의 시간 무대로서 ‘천지간’은 외숙모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고, 복중 태아의 삶으로 마감한다. 또한 득음을 갈망하던 소리꾼은 삶에서 죽음으로 들고, 죽음을 결심했던 여인은 죽음에서 삶으로 변곡하면서 구계등은 유일무이한 이야기의 공간으로 펼쳐진다.

이것은 삶의 문제, 죽음의 문제라는 단편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네버엔딩 스토리’가 구계등을 오르내리는 아홉 구비 물결처럼 끊임없이 펼쳐지고 접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은 끝나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삶을 징검돌로 삼은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사랑

천지간은 가을 초입에 서 있다.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가 구계등 청환석을 궁굴리는 소리가 노래처럼 들리다가, 비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속삭임처럼 들리기도 하고 저주처럼 쏟아지기도 한다. 스물일곱 해 전 꽃피우지 못한 칡꽃 같은 벗, 시인이 나와서는 안 되는 마을에서 시인이 되려다 져버린 벗의 시가 백만 가지 구계등 소리 속에서 새롭다.



밤새 벚꽃나무 위에 눈이 쌓였습니다

사랑스러 뵈는 두 연인의 사진 속에

꽃으로 장식되었습니다



바람이 일었습니다

꽃잎은 갈기갈기 찢겨 사방으로 흩날렸습니다.

외로운 포도 위를 뒹굴다가

차디찬 비에 젖어 땅에 묻히었습니다.

- 최장윤, ‘사랑’

완도군 군외면 갈문리
사랑이 아름다울수록 애달프고 간절한 것은 언젠가는 어김없이 다가올 이별 때문일 것이다. 공간(天)과 시간(地) 사이에 인간(人)이 ‘최고 귀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는 아니지만, 보이지 않게 주어진 더 큰 자연으로서 생활세계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하루에 한 번쯤 이것을 떠올리고 삶을 반성한다면 기존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이 철학자 후설이 말년에 한 생각이었다.

인간이 천지간 만물지중에 최고 귀한 존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 기술의 발달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가장 고귀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천지간 만물지중’에 인간이 직조(織造)하는 이야기가 ‘최귀(最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날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문화시대에 만끽해야 할 행복한 삶, 아름다운 사랑이다.

dk5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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