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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의 매력 속으로 빠지다

박영진의 세계스케치 기행 1)푸른 초원의 나라-몽골
천년의 역사동안 인류에 가장 큰 영향력 미친 인물 '징기스칸' 뽑혀
몽골 '발꼰스까야'를 주인공으로 탄생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2017. 07.05(수) 00:00확대축소
바이칼
초원의 향기ㅡ울란 바타르
연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림 8월 초 초원의 향기가 있는 몽골을 향해 비행기가 힘차게 솟아오른다.
시원한 레드 와인 한 잔이 입 안 가득 퍼지자 정수리를 가득 채운 더위가 사르르 사라진다.
몽골 승무원의 한국어 방송이 부드럽게 기내를 맴돌고, 아침 일찍 서두른 피로가 술기운처럼 몰려온다. 한국말을 참 곱게도 한다.
4시간의 하늘을 날아 징기스칸 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공항은 우리나라 작은 도시의 버스 터미널처럼 아담했다. 대합실을 나오면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엔 웃음꽃이 절로 피었다. 어느 이국의 공항에서 이렇게 살가운 정겨움을 느껴 볼 수 있겠는가? 낡은 버스를 타고 울란 바타르 시내로 들어갔다.
울란바타르는 '붉은 영웅'이란 뜻. 몽골의 수도이다. 징기스칸 동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높이 50m 내부의 엘리베이터를 타면 동상 꼭데기 까지 갈 수 있고, 징기스칸처럼 거대한 독수리를 팔뚝에 올려놓고 기념사진도 남길 수 있다.
1911년 몽골은 외몽골의 독립으로 두개의 나라로 나뉘어진다. 울란 바타르는 ‘우르가’에서 1924년 인민 영웅 ‘수흐 바타르’를 기념하여 이름이 바뀌었단다. 인구 13만의 도시, 녹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크고 작은 산등성이에 둘러 쌓인 '둘라강'을 앞에 두고 좌우로 모자이크처럼 촘촘히 집들이 펼쳐져 있다.
도시 중앙엔 화력발전소가 고원 지대인 이곳을 커다란 파이프에 뜨거운 물을 통과시켜 도시 전체를 덮혀 준다.
메마른 이 곳은 나무가 자라기 힘들지만 강 주변엔 드문드문 나무들이 키재기를 하고 강변에선 초동들이 수영을 즐긴다.
가이더 아저씨는 50대 초반의 록가수처럼 생겼다. 머리에서 신발까지 검은 진으로 패션감각이 뛰어나다.
공무원 월급은 한달 9만원 정도지만 부패가 심해 1억5천짜리 외재차를 몰기도 하고 160평짜리 고급 아파트는 1억을 훨씬 넘기도 한단다. 또 교육열이 높아 3개월 학원비가 한화 백만원 정도지만 끈질기게 영어 학원을 보내며 우리나라 처럼 치맛바람이 쎄단다.
(이건 몽고리안의 특징일까) 시내의 스카이샵 매장엔 한국 물건이 넘쳐 나기도 한다.
1911년 독립하였고, 18세기 청나라 땐 라마교가 전파되어 시내에는 높이 26m인 관음상을 모신 간등사원, ‘수호 바타르’영웅 동상이 중앙에 서 있다.
1921년 사회주의 국가가 되면서 종교 탄합이 심해졌으나 간등사원은 없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있어 더욱 유명해졌다. 이들은 유목민들이라 유적이 거의 없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흙으로 사라지는 그들이 자유롭다.
자이승 승전탑이 있는 뾰족하게 솟은 오름 옆 산에는 징기스칸 탄생 100주년을 기려 흰 돌을 박아 그의 초상화를 꾸며놓았다. 탑으로 가는 계단 중간에서 차를 내려 올라가는데 바람이 세차다. 탑에서는 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산을 따라 동서로 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한 눈에도 조밀하고 칙칙하다.
탑 위에서 하늘을 나는 흰 구름과 초원을 달리는 바람과 굽이쳐 흐르는 강물의 노래를 듣는다. 지상의 자잘한 모습보다 하늘을 향한 그들의 기상과 맑은 영혼이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팔레스 호텔 방에서 일몰을 본다. 산 위로 해가 진다. 9시 반이다.
1995년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지가 저무는 20세기를 보면서 지난 천년(서기1001년-2000년)의 역사에서 전체 인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뽑힌 이는 징기스칸 이었다.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지금도 ‘타타르의 멍에’라 하여 무서워하고 또 저주를 퍼붓는 서양인들이 그를 뽑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서쪽으로 부터 동방으로의 통행이 자유로워지자 상인들과 모험가들을 유혹하였고, 마르코 폴로의 무용담은 컬럼버스의 꿈이 되었다. 컬럼버스는 유럽과 아메리카 두 대륙을 연결 시켰다. 컬럼버스는 다른 사람이 동쪽으로 떠날 때 서쪽으로 떠났을 뿐이다. 왜 그는 대양을 가로 지르면, 중(원)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 했을까? 그는 이미 쿠빌라이 칸의 궁전에 관해 엄청나게 묘사해 놓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었던 것이다. 컬럼버스는 마르코폴로가 간 육로를 해로로 가려 했을 뿐이다. 만일 이슬람이 동서양 사이에 장막을 치고 있었다면, 마르코폴로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없었고, 폴로보다 앞서 정착문명의 장막을 무너뜨린 그 누군가가 있었다. 우주처럼 광대한 지구를 좁게 만들어 사람들이 대륙을 넘어 서로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든 주인공, 최초의 지구촌 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징기스칸이 있었다.
징기스칸 시대에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며, 알랙산더 대왕과 나폴레옹과 히틀러 세 정복자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넓다.
울란바트르로 가는 몽골 비야트항공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에 ‘징기스칸’이라고 그들의 언어로 적혀 있다. 비행기뿐 아니라 그들은 무엇이든 지상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마다 그 이름을 붙여둔다.
울란바트르에 도착하면 ‘징기스칸’호텔에서 ‘징기스칸보드카’를 마시고 ‘징기스칸’이라 써진 지폐를 쓴다. 몽골인들이 하늘의 별처럼 숭모하는 영웅 ‘징기스칸’이다.
울란바타르

이르쿠추크-동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추크를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해는 7시쯤에 뜨기 시작한다. 게르들은 부스스 잠을 깨고 붉은 현대식 지붕과 함께 마을을 장식한다. 공항은 북적이고, 몽골 가족이 여행을 가는지 전통복을 입은 할머니 한분이 곱게 앉아 계신다. 작은 쌍발 비행기는 8시 10분 이르쿠추크를 향해 출발한다. 지정석이 없어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날씨가 맑아, 창가에서 몽골의 초원과 바이칼을 마음껏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요란하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에 귀는 멍해지고, 내뿜는 격한 오일 냄새는 때 아닌 멀미를 일으키려 한다.
파란 풀이 부드럽게 깔린 산맥들. 고불고불 골짜기를 감돌며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들이 미쳐 감지않은 실타래처럼 엉켜 보인다. 아래 세상은 온통 녹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우린 하늘에서 가장 평화로운 색채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바이칼이 가까워지자 점점 산줄기가 높아진다. 초록들이 사라지고 ‘천지’를 닮은 작은 연못들이 군데군데 정안수를 담은 보시기마냥 흩어져 있다. 녹지 못한 얼음 무더기도 여기저기 허옇게 널려 있다. 신비롭다. 다시 숲들이 울창해지며 초록이 짙어진다. 그리고 바이칼이다.
‘성스러운 바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 ’시베리아의 진주란 애칭에 우리 민족의 발원지, 바이칼은 타타르 어로 ‘풍요로운 호수’란 뜻,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은 민물호수다 육지와 육지 사이에 박아 놓은 쐐기모양 모양새로 길이는 부산에서 평양정도, 면적은 남한의 10분의 1 크기, 수심이 깊은 곳은 1637m, 수량은 미국의 5대호를 합친 것보다 많다. 맑은 날엔 수심 30-40m까지 훤히 보일정도로 맑다. 바이칼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 336개인데 호수와 물이 빠져 나오는 출구가 알가라 강 하나뿐. 바다처럼 넓다더니, 640km가 한 눈에 들어 올 리가 없다.
바이칼 호수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르쿠츠크’를 거쳐야 한다. 19세기 중엽 1867년 알라스카가 미국에 팔리기 전까지는 알레스카도 이루쿠츠크 관활지였으며, 앙가라강을 따라 형성된 도시이다. 바이칼에서 빠져 나오는 앙가라강이 도시를 동서로 가로 질러 흐르고, 거리에는 재정 러시아 시절에 지어진 건축물과 고풍스런 목조 가옥들이 많아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린다. 러시아의 남쪽, 36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재정 러시아 시절 정치범들의 유형지로 사용되었다. 바이칼 호수덕에 시베리아 다른 도시들에 비해 온순하지만 한 겨울에는 영하 30도 까지 기온이 뚝 떨어진다.
시내 중심엔 큰 호텔이 (앙가라,바이칼)딱 2개여서 주로 외국인이 쉬어 가며 관광은 7,8,9월에만, 10월부터 6월은 비수기이다. 겨울이 춥고 길어 ‘보드카’라는 독한 술을 마시며 책을 읽고 긴 겨울을 보낸다. 남 시베리아에 위치한 우르쿠추크도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살며 브리트니족(몽골),러시아인,고려인, 우즈백인,중국인등 다양하다. 시내 중앙 광장 높은 건물엔 우리의 전자 시계처럼 그날 그날의 날짜,기온이 자동으로 표시된다.
바이칼 호텔에 짐을 풀었다. 점심 식사 땐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우리의 도착을 환영 하는 걸까, 몽골과 달리 이곳은 물이 풍부하여 가로수들도 울창하고 숲이 우거져 있어 마음부터 여유롭게 한다.
트루베츠카야 박물관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울 만큼 이르쿠추크가 아름다운 도시로 가꾸어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트루베츠카야와 11명의 여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잠든 곳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뒤쫓아 프랑스까지 나아갔던 젊은 러시아 장군들은 유럽의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크게 감명을 받고 자신들의 조국을 비관하게 된다. 귀족의 자제들이었던 그들이야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을 위하여 위로 부터의 혁명을 도모하게 된다. 이들을 ‘데카브리스트’라 일컫는다. ‘데카브리’는 12월을 의미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혁명은 실패하고, 1825년 피의 응징을 받아야했다. 전쟁에서 이겨, 유럽의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고 돌아와 개혁을 부르짖으며 일으켰던 혁명, 600여명의 혁명 관련자들 중 주모자 5명은 사형, 120명은 이곳 ‘우르쿠츠크’로 유배를 당한다. 가장 추위가 혹독한 ‘치타’지역에서 손발에 22kg이나 되는 쇠고랑을 차고 노동징역을 당했다.
마리아 발꼰스까야(1805-1863),그녀는 참으로 훌륭한 여성이었다. 높은 지위의 아버지와 왕비의 비서였던 어머니와 한살 된 아들을 두고 그녀는 남편을 찾아 나섰다. 그녀를 외면하고 30년이 지난 후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날 때 자기 딸이 가장 훌륭한 여성이었노라고 말했다 한다.
발꼰스키공은 1790년에 태어나 1860년까지 산 인물로 그는 청춘을 혁명에 바쳤고, 그리고 유형 당했다. 그들의 혁명은 100년 후 공산혁명을 낳게하는 근원이 되었다.
간등사원

아침이면 부인들은 탄광으로 들어가는 남편들을 면회하고 음식을 갖다 준다. 그녀들은 이곳에 와서 수공예품을 만들어 남편들을 공양했다. 러시아의 최고 가문에서 자란 여인들은 모든 가정일들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어떤 여인은 혹한의 기후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 갔고 , 남편들도 마찬가지, 살아남은 자들은 감옥생활을 마치고 이르쿠추크나 주변의 시골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허락받아 살았다.
발꼰스까야의 집에는 숙부 ‘톨스토이’의 사진이 걸려 있고, 푸쉬킨의 데드 마스크가 걸려 있다. 푸쉬킨은 마리아를 사랑했고, 마리아는 발꼰스키를 선택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발꼰스까야를 주인공으로 탄생되었다. 음악을 사랑했던 그녀의 집은 이르쿠추크 지식인들의 문화센터로 시낭송, 음악회, 정치토론의 장이 되었고,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혁명가와 낭만적인 여인들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여기에서 음악회가 열린단다.
마리아의 초상에는 힘든 여정과 인고의 시간과 성숙한 삶과 초월된 세상이 들어 있다. ‘발꼰스키’와 ‘트루베츠카야’가 생활하던 집이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다. 200년전 그들의 열정과 숭고한 사랑을 간직한 그들의 집을 나선다. 주인공은 떠난지 오래 되었지만 검은 목조 가옥은 아직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비에 젖은 모습으로 묵묵히 서있다.
자작나무 키 큰 숲들을 돌며 노래하는 앙가라강이 있고, 변함없이 늘 푸르게 반짝이며 흐르는 바이칼의 은빛 꿈들은 아마 그들의 희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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