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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풍경 속 원색의 아름다움 간직한 채 살아가는 매력적인 땅

박영진의 세계스케치 기행
3)시간의 모래위에 남긴 발자국-북인도여행(끝)
자이살메르 궁전, 몽환적 분위기 희열과 생명소중함 안겨줘
몸을 던진 아내들이 남긴 '사띠' 손자국 흔적 아직도 존경 대상
2017. 06.07(수) 00:00확대축소
자이살메르
'디와니암 하스트'궁전, 지상에 낙원 있다면 바로 이곳 칭송
조디프르 불루시티
무굴제국 최후의 정복지 조드푸르는 15세기 중반 1459년 말와르 왕조출신의 라지프트인 ‘라오조다’가 세운 도시로 타르사막 입구에 위치한 라자스탄 행정 중심지로 왕국의 수도로서 인도 두 번째 큰 도시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초입에 타르사막이 위치해 쓸모없는 땅이 많아서 예전엔 ‘죽음의 지역’이란 뜻으로 마르와르로 불렸다.
구자라트와의 중계무역 독점(건립초반)으로 인근 바메르와 낙가우르까지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으며, 오늘날 가장 붐비고 혼잡한 도시로 급부상했다.
불루 시티란 시바신을 모신 지배계급인 브라흐만이 자신들의 집에 푸른색을 칠해 다른 계급과 다름을 나타냈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파란색은 신비스러운 빛을 내고 모기를 쫓는데 효과적이란다. 메헤랑가르 성에서 내려다 보면 파란집들이 한 폭의 점묘화를 보는 듯하다. 1949년 라자스탄주 편입후 급부상하여 옛날의 영화를 다시 찾았다.
조디프르-불루시티

메헤랑가르성
125m의 절벽위 메헤랑가드 성은 파란색 물결위로 갑자기 솟아난 듯한 모습이 압도적이다. 튼튼한 방벽은 바위투성이 지대에서 스스로 자라난 것만 같이 웅장함을 더한다. 아래 도시에서 구불구불한 길이 성의 입구까지 이어져 있고 닳고닳은 반짝이는 돌길을 걸어 성문을 통과하면 길가에 늘어선 집시 여인들의 뜨거운 환대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15세기 착공해 19세기 초에 완성된 메헤랑가르성은 인도 전역에서 가장 규모가 커서 인도 3대 성중 하나다. 통로가 좁고 90도로 꺽여 있으며, 문에 쇠송곳을 박는 등 방어에 철두철미를 기했다. 코끼리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으로 전쟁의 선두에 코끼리 군대를 선두에 배치해 성문을 부수었기 때문이란다.
7개의 문은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중세 문학작품에서 금새 뽑아낸 것만 같은 신비로움을 준다. 비카네르 연합군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자야폴. 급한 커브길을 돌아서면 거대한 문 로하폴 역시 날카로운 송곳 등으로 무장되 있다. 태양의 문을 지나 위치한 박물관은 당시의 욍궁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16-19세기 무기전시실엔, 칼의 손잡이나 총자루에 새겨진 문양은 돋보기를 이용해야 확인 가능할 만큼 섬세하다, 상아로 상감한 여성용 아령. 낙타뼈로 만든 카페트 고정물, 왕들이 탔던 코끼리 안장, 왕자들의 요람만을 따로 모은 전시실등 각각의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호랑이, 사자, 공작등 동물모양이 많았다. 공작 깃털을 형상화한 공예품이 눈길을 끌었다. '철의문 벽면에 작은 손자국들은 1843년 만싱의 장례식 때 불길에 몸을 던진 아내들이 남긴 사띠의 흔적. 사띠의 손자국은 아직도 존경의 대상이며 보통 붉은색 가루로 덮혀 있다. 불속에 뛰어 들기 전 그들의 순결을 증명하기 위해 찍은 손도장, 우리의 홍살문처럼, 그 붉은 색의 손바닥들의 외침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사띠’의식은 1987년까지 인도에서 행해졌다.
자이살메르
사막이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라 생각하지만, 자이살메르의 금빛 모래성을 마주하면 그 말이 틀렸음을 확인하게 된다. 거대한 모래성이 지나간 시대의 신기루처럼 모래 평원위에 솟아 있다. 라자스탄 주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1156년 건설했으며, 해발 76m의 뜨리꾸따 언덕위에 왕관처럼 자리한다. 궁전이 모두 사암으로 만들어져 황금사원이라 불린다.
델리에서 기차로 20시간, 인도 최서단 도시로 인더스 계곡의 비옥한 평야사이의 타르사막에 우뚝 서 있다. 12세기 중반 자이살 공에 의해 건설되어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자이살메르는 존재한다는 게 기적 같고, 우리의 의식을 행복으로 채우고, 전쟁과 평화, 인류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밤하늘엔 별이 유난히 아름다워 벌꿀색 자이살메르 궁전은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며, 외로움과 낭만이 공존하는 곳으로 나에게 벅찬 감동과 살아 있음의 희열, 생명의 소중함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자이나교 사원과 과거 통치자의 오래된 궁전이 밀집되어 있다. 대부분 관광지가 북쪽이 있으며, 현재는 관광업과 군사기지의 각축장이며, 1965년부터 1971년 인도와 파키스탄 전쟁 후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가장 중요한 군사요충지로 떠 올랐다. 5층으로 이루어진 마하라자 궁전은 발코니와 창의 섬세한 조각이 돋보인다. 성안은 1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섬세한 15세기 조각상, 거울로 장식된 Rang mahal은 하이 라이트, 꼭데기에서 탁트인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카주라호의 탑

황량한 풍경 속에서 원색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강인한 사람들, 척박하지만 매력적인 땅, 누군들 죽기 전에 별이 총총한 사막에서 하룻밤을 꿈꾸지 않으랴?
결이 고운 모래언덕과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낙타사파리가 기다리고, 터번을 질끈 동여 맨 낙타 주인의 검은 얼굴과 느릿느릿 되새김질 하는 낙타의 얼굴이 절묘하게 매치돼 묘한 인상을 준다.
바라박
자이살메르 왕족들의 무덤인 바라박은 거대한 정원이란 뜻으로 풍력발전을 위한 풍차가 생겨 낭만을 더해 준다. 자이살머르 일대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아디나타사원
1446년에 건설, 3층 건물로 50년 이상 걸려 완공됨. 면들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살림싱키 하벨리
3백년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색 창연한 유산으로 남아있으며, 18-19세기까지 재상을 지낸 살림싱의 사저, 아래쪽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인데 비해 건물 맨 위층이 넓고 하단이 좁은 이색적인 건축양식이다. 섬세한 부조가 특징, 현재도 후손들이 거주하며 일부만 공개하지만 입장료가 비싸 맞은편 건물옥상에서 바라보았다.
자스원트타다
우유빛 대리석으로 된 마하라자 자스원드 씽 2세와 귀족들 무덤군, 모두 질좋은 ‘마까마나산’ 흰대리석으로 빛의 일부가 투과하는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자스완타다는 신의 위치로 격상되어 라자스탄 주민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디사가르
자이살 남동쪽 인공호수로 과거엔 식수였단다. 현재 겨울 철새 도래지이다. 길에서 바라보면 개선문 같은 거대한 문과 계단이 아주 특이한데, 마하라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던 거리의 한 여인이 세운 것이란다. 왕의 총애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왕실 여인들의 심한 반발에 ‘크리쉬나’신을 모시는 사원으로 용도를 바꿨다고 한다. 아름다운 수공예품, 침대시트, 거울로 만든 벽장식, 기름램프, 석조공예, 골동품이 유명하다
현재 자이살머르는 인구과밀과 배수시설 열악과 낙타사파리와 관광산업이 빚어내는 대규모 혼잡으로 몸살을 앓고 있단다. 도시의 오점인 물부족은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12세기엔 성채 3곳이 무너져 요새의 구멍난 배수 설비를 복구했지만 건축폐기물과 쓰레기등 무분별한 건축으로 힘에 부친다.
낙타사파리

낙타사파리와 낙타축제
쏟아지는 태양아래 황량한 사막을 낙타 등에만 의존한 채 넘어가는 경험은 낙타사파리에서만 맛볼수 있는 것, 오아시스에서 물 긷는 여인들의 화려한 전통의상과 관능적인 몸놀림, 공작의 몸짓, 밤이면 모닥불을 피워 놓은 채 나그네의 우수를 느낄 수 있다
준비물은 하루 1인당 800루피와 담요, 챙모자, 긴바지, 물티슈, 썬그라스, 물병 마스크, 스포츠브라가 필요하는 축제로 라자스탄에서만 볼 수 있다.
샘샌드 둔
자이프르에서 55㎞떨어진곳으로 부드럽게 물결치는 모래가 천지, 외국인이 들어갈 수 있는 구릉 중 가장 크기 때문에 관광객 많다. 입장료 징수로 인해 입장료가 없는 인근의 다른 구릉에 머무는 경우도 많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아래 모닥불 둘레에 모여앉아 라자스탄 춤과 음악을 듣는 것은 낭만적인 경험이다.
가난에 젖은 삶에서도 그들은 영롱한 눈빛과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는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소박한 삶과 오늘을 즐기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을 존경한다.
만다와
차분한 작은 시장도시로 18세기 주민들이 정착하여 이루어진 상인 가문들의 도시이다. 자이살머르에서 델리로 오는 도중 묶은 만다와 궁전은 궁전과 마을 전체의 건물 벽면에 화려한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꾸며져 있었다.
붉은성

파테흐뿌르
하벨리의 특징은 회화 장식, 페인트 칠한 안 뜰을 중심으로 아치, 수많은 작은창문으로 가득하다. 마른 회반죽에 정교하게 그림을 그리고, 외벽, 출입구 주변, 바깥마당, 안뜰, 방 일부에도 바닥부터 처마까지 빼곡이 그려놓았다. 화려한 프레스코화는 메마른 사막 풍경에 색을 더하고 외로움을 쫓기 위해 착상 했다고 한다. 주제는 신들의 일상생활, 현대발명품인 전화기, 기차, 비행기도 보인다.
세카와띠하벨리
귀족 상인들의 집이다. 18세 중반 영국은 동인도회사 무역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방상인 ‘마르와디스’을 이용했고, 이들은 새로운 해안도시에 정착 가족을 위해 하벨리를 지으며 발전을 했다. 하벨리는 1947년까지 성공의 상징물이자 편안한 삶을 유지하는 가정이었다.
올드델리와 뉴델리
BC 3천년경에 존재했다는 전설속의 고도 인드라쁘라스타를 기원으로 생성된 올드델리는 인도의 수도이자 중심으로 북인도 여행의 출발점인 200년간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갠지스강 지류인 아무나강 서쪽은 인도→아시아→유럽 대륙을 오가는 요충지였다.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가 흘러들어 용광로 역할을 해 왔으며, 17-18세기 무굴제국(이슬람)이 인도를 통합하고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었다.
뉴델리는 1911년 영국에 의해 조성된 계획도시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도시 구석구석을 살펴보자, 현실을 오가는 두터운 먼지 속에는 종교와 신화,역사가 살아 숨쉬는 보석같은 모습이 숨어 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숱한 왕조가 멸망해 갔지만 샤자한이 아그라에서 사자하니바드(지금 올드델리)로 수도를 옮긴 것을 계기로 델리는 인도 전체를 호령하는 위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857년 발발한 세포이항쟁으로 영국에 밀려 행정은 꼴까타, 경제는 뭄바이로 이양하는 시련을 겪었지만, 20세기초 꼴까타에 불어닥친 인도민족해방운동을 계기로 다시 정치,경제,행정의 중심지로 떠 올랐다.
올드델리의 붉은색 사암으로 지은 붉은성 (랄키라성)은 눈부신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벽과, 대리석 기둥인 '디와니암 하스트'궁전, 디와니커스(왕의 접견실)는 당시 페르시아시인들은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다’ 라는 시를 바쳤던 곳이다. 온벽을 보석으로 치장했지만 모두 도굴되고, 마지막 남은 공작좌는 인류가 만든 최대의 화려한 걸작이라 칭한다.빅영진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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